작성일 : 05-01-26 00:00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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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 편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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글쓴이 :
김영우
 조회 : 3,90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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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생님.
지금까지 "관계에 있어서의 조화"라는건 저에게 몹시 중요했습니다.갓난아기처
럼 인간관계가 한정되어있는 제게는 가족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고도 힘
들었습니다.
제게 있어 조화란 "큰소리가 나지 않는 상태",그것이었습니다.
큰소리가 나는 상태가 저는 못견디게 두려웠으니까요.
그래서 저는 "조화"라는 것을 이루기위해 누구와도 부딪히지 않으려고 했습니
다.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고,부당한 대접에도 의연하게 견뎠으며,누구도 저
로 인해 힘들어지지 않게 하려 했습니다. (이 방식은 이제 가족관계 뿐 아니
라 저의 모든 대인관계에까지 퍼져 버렸습니다.)
저로 인해 집안에서 큰소리가 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.
하지만 그것은 "기울어진 조화"였고, 더 나아가서는 "분노로 꽉 채워진 뒤틀
린 조화"를 낳았습니다. 저는 점차 지치고,외로와졌고,내가 무엇을 원하는지
모를 지경에 이르렀습니다.
처음 바랐던 것은 분명 "완전한 조화"였는데 "조화로움"이라는 그 단어 자체
에서 풍겨지는 아름다운 평화의 상태가 제 속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. 내 입
에 스스로 재갈을 물린 것 같았습니다.
진정한 의미에서의 조화라면 아마도 양쪽 모두에게 만족스럽고 평화로우며 기
쁜 상태이어야 할 것입니다. "양쪽 모두에게"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조화를 위
한 저의 노력이라는 것은 억지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.지금 저
의 내부는 부조화의 극한에 이르러 있으니까요.
선생님께서 지난 치료때 제게 말씀하시려던 부분이 아마도 그 비슷한 것이 아
니었을까하고 생각합니다.
사람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,제게는 무언가 빠진 것이 있다고 느끼게
되었습니다.
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정확히 모르겠습니다. 그건 다른 사람들에게는 본능처
럼 가지고 태어난 것이고 저에게는 날때부터 작동이 안되는 어떤 기능이라고
생각합니다.
"큰소리가 나지 않는 상태"가 곧 "조화"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
것을 알았을 때 많이 놀랐습니다. 세상과 나 사이에는 은하수만큼의 긴 강이
놓인 것 같았습니다.
사람들은 자유롭게,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"표현"이라는 것을 합니다. 사람들
이 하는 표현의 방법에는 말 이외의 것이 더 많습니다.어쨌든,무슨 수를 쓰든
강력하게 자기의사를 전달합니다.
저는 그게 매우 신기했습니다.
어째서 신기한 것인지를 논리정연하게 설명해보라고 하지 말아 주세요.저도
설명 못합니다.
저는 "받아들여 질 수 있는 방향"으로 제 의사표현의 수위를 적절히 조절했고,
때로는 의사의 내용자체를 "받아들여지리라고 예상되는 것"으로 아예 바꾸어버
리기도 했습니다.
그래서 일단 제게서 표현된 의사는 거의 받아들여졌습니다.어쩌면 그건 제 의
사라고 말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네요.
머리가 아픕니다.제가 제대로 표현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.
제 마음을 바라보는 일도 어려운데, 마음밑에 있는 마음을 제가 무슨 재주로
표현하겠습니까.
제게 가까이 있다고 느껴지는 그 누군가와 마음속 대화를 나누는 일은 이제 크
게 마음 쓰이지 않는 일이 되어갑니다.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고, 그렇
다고 두려워하지도 완전히 배척하지도 않습니다. 그냥 저를 꽤 잘 아는 사람
이 한마디 보태주는 애정어린 충고나 조언으로 듣고 있습니다. 듣기도 하고 가
끔 대화를 하기도 합니다. 익숙한 일이 아니기때문에 전 약간 장난같은 기분
이 들기도 하구요.
오늘은 길을 걷다가 마음속의 그 누군가를 향해 약간 짓궂은 생각이 들어 은근
히 가볍게 한번 떠보았습니다.(사실은 정말로 궁금하기도 했습니다.)
"제가 본 과거의 삶들이 정말로 제가 겪은 삶인가요? 만약 그렇다면 진짜 확실
한 물증을 한번 내놓아보시겠어요?"라고요.(내심,불시에 급소를 찔렀다고 생각
하여 흐뭇했습니다.)
그런데 대답은 즉각 돌아왔습니다.
"지금 당신의 모습이 가장 확실한 증거지요."
숨이 탁 막혔습니다.이 말이 무슨 뜻인지 뼈아프게 알기 때문입니다.
이 상대에게 덤비면 백전백패입니다.
언젠가는 저더러 "빛"이라고 추켜세워주더니 이번에는 그 끔찍한 삶들의 증거
라고 말합니다. 앞뒤가 안맞지않느냐고 인상을 썼지만,가슴 깊은 곳에선 모두
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또 무슨 이유일까요.
예전에 "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 현재를 이해하게 되고,자신의 현재를 보면 미
래를 알게된다."는 말을 책에서 보았을때는 당연히 그렇지하면서 넘어갔습니
다.그때는 그 말의 범위를 한 사람의 한 생에 해당하는 것으로 국한시켰었지
요.그 이상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.
지금은,그 말이 영혼의 끝없는 생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.
저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을 두서없는 글로 계속 쓰고, 선생님은 쓰여진
글로는 다 보여드릴 수 없는 제 마음을 행간에서 짐작하여 읽어주시리라 생각
합니다.
선생님과 제가 한팀이라 하셨지요.끝까지 함께간다 하셨던가요?
제가 쓸 수 없는 것,그리고 선생님께서 읽을 수 없는 것이 남아있다면 우리팀
의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우리에게 느끼게 해 줄 것이라고 믿어봅니다.
우리팀은 팀원이 꽤 많은가 봐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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